유가 불확실에 물가·경제 '안갯속'
美 긴축 장기화 시사에 관망 필요
남주현 기자 = 10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결정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시장에서는 딜레마에 처한 한국은행이 현재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장기화 선언과 3%대로 높아진 물가는 금리 인상의 당위성을 높인다. 하지만 경기 부진과 가계부채 등 금융불안정에 대한 경계심은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만드는 요소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따른 국제유가 불확실성도 동결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15일 한은에 따르면 금통위는 오는 19일 통방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통위는 올해 1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5%로 올린 후 8월까지 5회 연속 금리를 동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10월 금통위에서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게 본다. 금리 인상을 단행할 근거와 인하에 나서야 할 이유가 충돌하는 가운데 유가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며 한은이 우선 시장을 관망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美 금리 인상한다던데"…우리 물가도 3%대
금리를 높여야 할 주장의 근거로는 먼저 미국의 긴축 기조 움직임이 꼽힌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현재 2.0%포인트 차이인 한미 금리차가 더욱 확대되며 자본 유출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9월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직후 공개된 점도표에서는 연내 1차례 금리 인상이 전망되고 내년 금리 인하 횟수는 당초 4번에서 2번으로 줄며 긴축 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지속되던 외국인의 증시 순유입도 미국 긴축 우려가 높아진 8~9월 31억3000만 달러 순유출로 전환된 상태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물가도 금리 인상의 근거로 거론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 2.3%대로 내려왔지만, 8월 3.4%를 기록한 후 9월에는 3.7%로 5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하며 3%대를 이어가고 있다.
◆높아진 경기 부진 전망…부동산 경착륙 경계
한은이 선뜻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는 근거도 만만치 않다. 우선 경기 부진이 꼽힌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더딘 가운데 우리 경제 부진 역시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은 최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월 2.4%에서 2.2%로 낮춰 잡았다.
가계부채의 딜레마도 금리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9월 은행권 가계부채가 108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가운데 상반기 취약차주는 300만 명에 달하고, 비은행권의 부동산PF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상반기 기준 121조원에 육박한다. 금리를 낮추면 가계부채가 급등할 우려가 높아지고, 올리면 금융 불안정이 야기될 수 있다.
한은으로서는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는 정부와의 엇박자도 골칫거리다. 자칫 금리를 높였다가는 부동산 폭락에 따른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팔 전쟁에 높아진 유가 불확실성
최근에는 국제유가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이 중동 전쟁으로 확산될 경우 유가가 100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유가 급등은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소비 위축과 수입 물가를 높인다는 점에서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을 높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가 움직임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80달러 중반을 넘어설 경우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10월 금통위가 다음달 1일 열리는 FOMC보다 2주 전에 열린다는 점에도 동결 전망을 높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은이 우선 금리를 유지하고, 매파적 메시지를 보이며 미국 시장 분위기를 관망할 것이란 의견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부동산 연착륙 등의 금융불안정이 우려되는 만큼 당장 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어렵고 연준의 긴축 시사에 인하 타이밍을 잡기도 애매하다"면서 "우선 금리 동결에 나선 후 연준의 행보를 보면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